태초에 말은 인류에게 있어 좋은 먹잇감이 되는 사냥의 대상이었다. 약 2만 5천 년 전, 구석기 시대에는 말을 사냥하거나 포획해서 고기로 먹거나 젖을 짜서 먹는 등 식량 공급원으로 중요하게 활용됐다.

처음으로 가축화된 시기는 약 6천 년 전 청동기시대 이후. 재갈을 사용해 말을 부릴 수 있게 되면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수렵과 농사 등에 노동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말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언제일까? 말의 사육은 선사시대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지만, 부여, 옥저, 고구려 등에서 이미 목장을 설치해 소, 돼지와 더불어 말의 사육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기마전이 보급됨에 따라 말의 수요가 늘게 됐다. 이때부터 말은 영토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과 통신용의 역마, 교통, 교역 등 다양한 활약을 하며 우리 민족의 삶과 고락을 함께했다.

한반도에서 말(馬)이 어떻게 우리 민족과 함께 오천 년 역사를 이어왔는지, 그 연대기를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3편의 시리즈로 전하고자 한다. 먼저 그 첫 순서로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과거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륙을 질주하던 개마무사를 아는가?]

우리 선조들의 역사에서 말은 군마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 한반도에서 기동성을 갖추고 사냥과 군마로 활약한 말은 '과하마(果下馬)'다. 고구려와 동예에서 났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몸집이 작아서 과수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는 말이라는 뜻으로 과하마라 불렀다. 토마라고도 하며 제주마가 대표적인 품종이다. 중국의 후한서에 의하면 ‘고구려에는 과하마라는 조랑말이 있어 이것을 타고 달리고 산을 오르내리면서 보다 기동성 있는 사냥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 유목민족들은 서역에서 나는 천마 한혈마라고 하는 큰 말과 동방의 과하마라고 하는 조랑말을 같이 썼다고 전해진다. 큰 말은 상대를 위협하기에 장점이 있었고, 과하마는 속도가 빠르고 지구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주로 북방 대륙으로 진출한 고구려는 서역의 말을 수입해 군마로 썼고 과하마를 군마로 주로 이용한 것은 조선이다. 조선이 역대 왕조 중 기병을 가장 많이 보유했는데 산이 많다 보니 큰 말보다는 작은 말이 더 유리했던 것. 물론 북방같이 중요한 곳이나 왕이 타는 말은 큰 말도 사용했다

삼국시대의 말은 영토와 세력 확장에 있어 말이 절대적 수단이었다. 강력한 군사 국가였던 고구려는 만주에 걸쳐 광활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을 건설했다.

중국 지린성에서 발견된 삼실총 고구려 고분벽화 동벽묘사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다. 고구려가 이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말과 장수가 철갑옷을 입은 고구려의 주력부대, ‘개마무사’ 덕분이었다.

[철갑옷을 두른 불패의 상징, 개마무사]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동천왕이 이끌었던 철기병 5천 명이 양맥 전투에서 위나라를 격파했다고 나온다.

개마무사는 말과 장수 모두 철갑옷으로 무장하고 창을 휘두르며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데 현대로 치면 탱크와 같은 전력을 담당했던 것. 고구려 개마무사의 창은 길이가 5.4m, 무게가 6~9kg에 이를 정도였다니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으리라.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정예부대를 두고 철기병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바로 개마무사였던 것.

그렇다면 개마무사가 과연 고구려에만 존재했을까? 말에 갑옷을 입힌 개마무사는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다른 국가들도 모두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1992년 경남 함안군에서 실제로 마갑이 출토된 바 있고 2009년에도 경주 쪽샘지구에서 상태가 양호한 마갑이 출토돼 화제를 모았다.

이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했던 삼국시대 개마무사의 실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고구려에서도 고분벽화 외에 실물자료가 제대로 출토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불패의 상징 개마무사 덕분은 아니었을까.

[말馬, 조공무역의 중심에 서다]

동북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한반도는 대륙과의 조공(朝貢)무역을 통해 국가 질서를 유지해 왔다. 조공(朝貢)은 종주국에 정치적 독립을 인정받은 책봉 국들이 종주국의 정치, 문화, 경제적 질서에 편승하는 것을 상징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외교체계다.

우리나라는 흔히 조공을 바치기만 한 조공국으로 알려졌지만, 삼국시대 고구려나 고려왕조, 조선 시대 전기에 만주와 요동 일대 여진족 등 북방 민족들에게 우리나라도 조공을 받고 종주국 역할을 했다. 사실 종주국도 조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공국에 변란이 생기면 군사적 지원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굴욕적 관계지만 실리적인 관계이기도 했다.

삼국시대부터 중국의 역대왕조에 조공외교(朝貢 外交)를 한 것은 강요에서라기보다는 더욱 많은 선진문물을 수용하고 실리를 챙기는 무역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 예로 조선이 명나라에 바치던 가장 많은 조공품은 '말(馬)' 이었는데 이는 몽골 북방민족과의 교전이 잦던 명나라가 많은 군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명나라와 직 교역로가 없던 여진족들에게 말을 싸게 사서 명나라에 비싸게 팔았으며 명나라와의 말 교역가도 직접 정할 수 있었다. 이때 조선왕조가 여진족에게 사들인 말을 명나라에 팔고 받은 말값은 10배가 넘었다니 그야말로 중계수익으로 쏠쏠한 이익을 챙긴 셈이다.

조선 시대 정조의 개혁정치를 뒷받침 해 준 축조물이 수원 화성이라면, 당시 기마민족인 우리의 우수한 기마 무예를 정립한 것이 '무예도보통지'이다. 정조 때 이덕무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종합무예서로 마상재를 포함해 24종의 무예 기술을 그림과 함께 만든 책이다.

무예24기는 한·중·일 동양 삼국의 군사 무예를 집대성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동양 무술사의 서술에 『무예도보통지』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데. 수원시는 여기에 실린 무예24기를 공연으로 제작해 시민들께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수원화성에서 활약한 정조의 기마대가 수원시 대표 관광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

이처럼 한반도를 누비던 말의 역사는 유물 혹은 다양한 콘텐츠로 우리에게 기마민족의 후예임을 일깨운다. 웅비하는 개마무사의 기상을 되새기며 다음 시간엔 20세기 이후 한반도의 말, 그 문화와 역사를 되짚어 보기로 한다.

<출처 및 참고>
_金요일에 보는 경제사] 중국에 하던 조공, 굴욕이었을까 무역이었을까 (아시아경제 2017.06.23.)
_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수막새 출판)
_문화원형백과 고선지 실크로드 개척사 (한국콘텐츠진흥원 2002)
_[네이버 지식백과]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_한국 7대 불가사의 (역사의 아침 이종호_2007)